교포 살이

첫 시험

jywind 2010. 10. 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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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것, 시험. 초등학생이나 대학원생이나 시험이 부담스럽긴 매한가지다.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사회언어학(sociolinguistics)과목은 시험을 세 번 봐야 하고, 프로젝트 페이퍼도 제출해야 한다. 한국말로 알고 있던 개념들도 영어로 풀어내려니 머리 속에서 잘 연결이 안된다. 인덱스 카드에 적어도 보고, 컴퓨터에 입력도 하고, 그걸 다시 녹음해서 들어도 보고, 같이 수업 듣는 외국인 학생들끼리 토론도 해 보았는데, 여전히 잘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말로 할 때는 분명한데, 영어로 개념을 들으면 때로는 안개 속에서 보는 것처럼 뿌연 느낌이다. "교수님, 공평하게 우리는 한글로 쓰면 안 될까요?"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어쩌겠는가, 미국에 공부하러 왔는데.
시험치러 교실에 들어가니 벌써 일찍 온 학생들은 쓰고 있다. 가방 놓고 화장실 가야지 했던 생각은 그 교실 속 분위기 때문에 싹 없어지고 앉아서 정신없이 쓰기 시작했다. 개념 정의, 오지선다, OX, 거기다가 에세이까지 써야했다. 다행히 시험 시간은 충분히 주셔서 그래도 비교적 편안하게 쓸 수 있었다. 공부했던 내용들이 거의 다 나와서 '망쳤다'하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다행이다 싶다. 미국 애들 표정도 보니 나나 걔들이나 상태는 비슷한 듯 하다. 개념이 헷갈리고, 잠 설치고 긴장해서 푸석하고, 꼭 내가 외국인이라서 힘든 건 아닌 듯 하다.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이번 학기에 듣는 수업 중에는 학부 수업도 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10살이나 적은 애들이랑 공부하니 힘들지 않겠냐고 한다. 나도 학부생일 때 수업들으러 오시는 '아저씨'나 '아주머니'들 보며 참 힘드시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물론 학부생일 때 비해서 외우는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렇지만 같이 수업 듣는 '애기'들보다 10년이나 더 먹은 밥은 공으로 먹은 게 아닌 걸 알게 된다. 영어가 모국어도 아니고 암기력도 떨어지지만, 그간의 경험들이 쌓여서 오히려 이해력이 좋아진 느낌이다. 학부생 때 이해가 안 되었던 개념도 정확하게 외우진 못해도 이해가 되는 경험을 이번 학기에 많이 한다. 느낌으로 끝나지 말고 좋은 결과로도 나타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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