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의 폭설이라던데
한 삼십 센티미터는 온 것 같다. 목요일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날 저녁 아홉 시 무렵 귀가할 때부터 인도가 걷기 힘든 상태였다. 아파트에 들어오니 한 번씩 인사하는 아저씨가 운동을 하고 온 듯 하다. 원더풀이란다. 오늘 그런 얘기 처음 들었다고 하니 자기는 어릴 때부터 눈에 대한 좋은 추억이 많다고 한다. 난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는 문구가 생각났는데... 이제 걱정이 기쁨보다 큰 걸 보니 더이상 애는 아닌가보다. 집에 와서 혹시나 하고 아이들 학교 홈페이지에 학교 수업이 취소될 수 있으니 잘 보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그 다음날 아침이 되니 완전히 딴 세상이 되어 있었다. 땅도 하늘도 하얀색이다. 신경 쓰며 잤더니 새벽에 눈이 떠져 인터넷부터 확인을 했다. 스쿨버스는 취소인데 학교 수업은 한단다. 미시간에서는 이번에 온 눈의 절반 정도만 와도 학교 수업이 취소되었을텐데, 캐나다 사람들이 눈에 좀더 대담한 듯 하다. 어제 오후부터 오던, 과장 조금 보태어 영화 '투모로우'에서나 보던 강풍+폭설이 계속 되고 있는데 학교를 오라니. 아침 등교 시간에 보니 그 많던 유모차 부대는 흔적도 없고 몇몇 학부모들이 푹푹 빠지는 눈밭에 아이들을 끌다시피 학교에 데려가고 있다. 몇몇 학부모는 눈썰매에 아이들을 태우고 간다. 점심 무렵 둘째를 데려다주는 아내를 보니 눈을 치운 곳에는 잘 걷다가 눈밭을 만나니 아이를 들고 가는데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것이 보인다.
할 수 없이 하교 시간에는 협동작전을 쓰기로 했다. 1년간 벽장에 잘 자고 있던 눈썰매 두 대를 꺼냈다. 작은 애를 교실에서 인계받아 먼저 한 대에 태워 아파트 근처까지 끌어다주었고, 아내가 먼저 데리고 들어갔다. 날씨도 아랑곳 않고 노는 아이들도 보이지만 우리가 볼 때는 희희낙낙 놀 만한 날씨는 아니었다. 나는 다시 다른 한 대를 가지고 큰 애를 데리러 갔다. 작은 애 반도, 큰 애 반도 아이들이 절반도 오지 않았다. 큰 아이는 눈썰매를 보고 신이 났는지 집에 올 짐은 안 챙기고 친구들 불러다 자랑하기 바쁘다. 나 말고도 데리러 온 학부모들 상당수가 눈썰매를 한 대씩 끌고 왔다. 푹푹 빠지는 길에 아이를 끌고 가는 것보다는 썰매에 태워 데려오는게 훨씬 편했다. 다만 루돌프나 썰매개 기분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은 좀 들었다. 그렇지만 아이들도 이렇게 눈이 많이 왔는데 한 번 안 타보고 겨울을 나면 섭섭하지 않겠나.
그런데 오늘 아침엔 또 날씨가 변했다. 해가 활짝 났다. 이런 걸 천변만화라고 하는걸까? 월요일에는 비가 예고되어 있다. 이 많은 눈이 거의 다 녹겠지. 그러면 뭐하겠노. 또 눈이 오겠지. 눈 오면 뭐하겠노. 꽁꽁 얼겠지. 그러면 못 나간다고 사놓은 소고기 묵겠지...
두 해 전 그랜드래피즈에 오십 오 센티미터 눈이 온 적이 있다. 잠깐 나가보려 아파트 빌딩 문을 열고 나가니 눈이 허리까지 차 있었다. 거의 이틀 간 집에서 나가질 못했었다. 도로에도 하루 종일 차가 다니질 않았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건 - 그것도 이번엔 이틀 동안 가로로! - 태어나서 두 번째로 보았다. 우리 왔다고 캐나다 겨울이 맛 좀 보여주기로 작정을 했나. 이번 겨울은 눈도 많고 춥기도 참 춥다.
(집에서 찍은 비디오에는 보이던 눈의 반도 안 보이는 듯 하다. 썰매 끌 때는 힘들어서 못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