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2012년 베스트셀러 = 성경?
국제 뉴스면에 눈에 띄는 제목이 하나 있다. "노르웨이 최고 베스트셀러는 성경" 보통 어떤 책이 많이 팔린다는 걸 광고에서 표현할 때 "성경 다음으로 세계에서 많이 팔린 책!"이라고들 할 정도로 성경은 역사적인 베스트셀러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저게 뭐가 뉴스가 된다고 그럴까.
놀랍게도 2011년에 노르웨이어로 새롭게 번역된 성경이 출간되었는데 이 새로운 번역본이 2012년 한 해 동안 다른 어떤 흥미진진한 소설보다도 더 많이 팔렸고, 그 인기에 힘입어 6시간짜리 연극까지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AP 통신을 인용한 우리나라 신문 기사에서는 아쉽게도 그 이상의 사실, 그러니까 그 번역이 그 이전의 번역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특별히 그러한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을 찾을 수 없었다.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좀더 뒤졌고 관련 기사와 노르웨이 성경공회 홈페이지를 통해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1. 현대어: 제일 중요한 점은 노르웨이 현대어로 제대로 번역된 성경이 출간되었다는 점이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노르웨이에는 '보크몰'(bokmål: "책말")과 '뉘노르스크'(nynorsk: "신(新)노르웨이어")라는 두 가지 표준문어(文語)가 사용된다고 한다 (노르웨이의 다른 언어나 언어분쟁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노르웨이 성경공회에서는 1999년 성경 개정에 착수했는데, 언어가 빨리 변하고 있어서 개정이 아니라 전면 재번역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그래서 2005년 신약 번역이 완료되었고, 처음 작업을 시작한 2011년 성경 전권 재번역을 마친 것이다. 이 번역과정에는 성경 원어 (히브리어, 헬라어) 전문가뿐만 아니라 소설가, 시인과 같이 현대 노르웨이어의 전문가들도 참여했다고 한다.
2. 광고: 성경 발간에 맞추어 대중 언론 매체를 통해 궁금증을 유발하는 티저 광고를 내보내었고, 출간에 맞추어 성경의 인물들로 분한 사람들이 책방 앞에서 행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게다가 마치 애플에서 최신 기기를 판매할 때처럼 자정부터 판매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들이 젊은 사람들이 새로 출간된 성경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대한성서공회도 2010년에 성경보급이 증가했다는 보도자료를 낸 바 있지만, 이 부분은 개역개정판 성경이 예배용으로 보급되게 되었다는 점, 즉 다니는 교회의 예배용 성경이 바뀌어서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새로운 번역본을 구매했기 때문이었다. 노르웨이의 경우는 5백만 인구 중 교회 다니는 인구는 1%밖에 되지 않는데 일반 서점에서 일반 서적 판매량을 압도할 정도로 성경이 판매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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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성서공회 홈페이지의 2011년 성경 출간 관련 글의 소개 사진들.
(사진에 관한 모든 권리는 Bibel.no와 The Norwegian Bible Society에 있음)
3. 종교
1) 타종교: 분석 중에서 특히 흥미를 끌었던 것은, '이민자들의 급격한 유입'(과거 6년간 25만 8천명이고 전체 인구 5백만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이 성경이 새롭게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 점이었다. 다른 국가에서 이민 온 기독교인들과 또 다른 종교인들과 만나게 되면서, 최근까지 루터교가 국교였던 노르웨이 국민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에 대해 새삼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수백 년 문화에 녹아든 신앙은 점점 진부해져 최근 노르웨이 의회는 루터교의 국교 지위까지 박탈했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신앙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럼 나와 내 조상의 신앙은 뭐지?'하는 물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2) 개인적 특성: 노르웨이인들이 특히 종교를 매우 개인적인 일로 본다는 점도 이번 현상의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휴일이면 한적한 산, 피요르드, 숲의 오두막에서 고독하게 보내는 노르웨이인들은 어떤 사람의 종교성 혹은 영성을 종교 행위의 참여도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교회에 열심히 나간다고 신앙이 좋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적인 신앙 추구, 즉 성경을 읽는 행위가 신앙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개신교 인구가 18%(2005년 통계청)라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현대어로 번역한 성경들도 계속 발간되고 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 인구 비율과 현대어 번역이라는 두 요소는 이번 현상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 영성 추구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종교-개인적 특성) 다른 종교인들과의 만남으로 자신의 종교에 대하여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종교-다문화), 때마침 현대어로 번역된 (현대어) 성경의 출간 소식을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알려주는 (광고) 네 요소의 결합이 성경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현상을 만들어낸 듯 하다.
관련 기사에 나오는 "성경의 사상과 이미지들이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 1"는 인터뷰는, '신앙의 발달 단계'로 유명한 제임스 파울러나 종교학자인 클리포드 기어츠는 종교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정의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즉, 종교는 우리의 세계관이다. 성경은 기독교인에게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무례한 기독교'의 전도 방법이 아닌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초대장으로 성경을 제시할 때, 오히려 기독교인들의 복음 전파의 의무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물론 2011년판 노르웨이어 성경에는 '보수적인' 입장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보인다. 동정녀 마리아, 즉 '처녀'라는 단어를 '젊은 여인'으로 번역했다는 점이나, 성경의 연극화에서 예수님에 대해 거룩하지 못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문제점을 빼고라도 분명히 이번 현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 대한성서공회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성서공회들은 이 현상을 분명히 의미있게 보고 있을 것이다 (영국성서공회엔 관련 글이 있다). 우리나라 신문에서도 목회자의 학문적, 도덕적 문제나 교회의 분쟁에 대한 기사가 아니라, 노르웨이에서처럼 성경이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는 기사를 볼 수는 없을까.
아래에는 이 글을 쓰면서 참고한 곳들을 열거해 둔다.
- “Thoughts and images from the Bible still have an impact on how we experience reality.”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