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분쟁, 사탄의 최선의 전략
교회는 교회 울타리 안이 아니라 그 밖을 더 생각하고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모임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보아도 그렇다.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려면 교회 밖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사랑하며, 나아가야 한다.
세습, 돈 욕심, 무리한 건축, 교회 헤게모니 장악, 목회자의 부정 등 한국 교회를 어렵게 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이런 문제는 거의 다 교회 분쟁으로 이어진다. 사역자들의 분쟁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바로는 성경에 있는 단 한 건, 바울과 바나바가 싸워서 선교팀이 둘이 되었다는 그 한 건뿐이다. 그나마 바나바 팀의 사역 기록은 우리에게 없으니 두 팀이 되어 두 배의 성과를 내었는지는 모른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듯이 다투는 나라는 바로 설 수 없다. 모아야 힘이 되는 법이다. 분쟁은 교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회 분쟁이 특히 문제인건, 분쟁이 시작되는 순간 연관된 모든 사람들이 교회 안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대의명분을 가지고 시작된 분쟁이더라도 결국 연관된 사람들은, 교회가 밖을 바라보도록 만들어진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안에서 싸움에 이기는 데만 온 생각과 힘을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그 싸움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는다. 한쪽편이 기적적으로 다 죽지 않는 한, 평생 계속되거나 혹은 대를 이어 계속 된다.
교회 분쟁에 참여하고 계신가? 교회 분쟁은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게 하는 사탄의 좋은 전략일 수 있다는 생각을, 씨에스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으며 하게 되었다. 사탄이 제일 무서워할 일은 지상의 온 교회가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닮고,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무지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렇지만 할 일 제대로 안 하면서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면 어떨까.
공의를 위해 싸우고 계신가? 성경의 공의는 사랑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사랑이 없는 공의는 더이상 공의가 아니다. '잘하였다 충성된 종아' 듣기 위해 시작한 싸움이라도 결국 듣게 될 말은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라'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교회 분쟁이라는 문제에 대해 성경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하나 뿐이다. 내가 지는 것.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고린도전서 6:1-8, 개역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