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 살이

시간이 없어 미안하다

jywind 2016. 10. 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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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보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어떤 여자분이 외국에서 어떤 노신사에게 "Do you have the time?"이라는 질문을 듣고,

작업 거는 멘트로 알고 쌀쌀맞게 거절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 표현이 시간을 묻는 것이라는 걸 알고는 무안해 했다는 이야기였다.

읽고 난 후 명심해 두겠다 다짐했었다.


지난 주말이었다.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비가 와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산을 꺼내려는데 모자를 삐딱하게 쓴 청년이 다가오며 높은 톤의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청: Do you have the time?

나: No. Sorry.

청: Approximately...

나: Sorry.


굳이 변명을 하자면 가족들 비 안 맞게 하려고 우산 꺼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우산에 대한 생각으로 꽉찬 당시 내 머리 속에 비집고 들어온 그 대화의 의미는 이러했다.


청: 저, 시간 좀 있으세요? (껄렁)

나: 아니. 미안. (단호)

청: 대략 쫌만이라도...

나: 미안. (쌀쌀)


차를 타니 가족들이 그 아저씨 무슨 말을 했냐고 묻는다.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감이 온다.


청: 지금 몇 시인가요? (공손)

나: 아니. 미안.  (쌀쌀)

청: 대략이라도... (애절)

나: 미안.  (쌀쌀) 


그 영화관은 광역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있다. 청년은 서점 방향에서 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가 버스 시간이 다되어 급하게 나온 것 같았다. 

버스 시간에 늦었나 마음 급한 청년에게 쌀쌀 맞은 뜬금포를 날린거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청년의 애절한 목소리가 머리 속에 울린다.


"대강이라도 좋으니 시간 좀 알려 주세요!"


청년이여, 시간이 없어 미안하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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