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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교수 이론(Theories of Instruction)이라는 3시간짜리 교육학 수업이 있다. 수업을 담당하는 잰 교수님은 우리 과정의 advisor이기도 한데, 틀에 박힌 것을 싫어하시는 듯 하다. 지난 여름 학기를 마치고 혼자서 캐나다 록키까지 스쿠터를 타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중간에 돌풍을 만나서 날아오는 쇼핑카트에 맞고 나가 떨어지기도 했고, 유스호스텔을 잘 못찾아 밤에 산 꼭대기까지 갈 뻔하기도 했다고 한다. 손주를 보았지만, 그래도 할머니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에너지가 넘쳐나는 분이다. 수업에도 그런 성향이 많이 드러난다. 찬양과 기도로 3시간의 수업을 시작하는데, 강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리 정해진 책을 읽고 수업에 오기 전에 인터넷의 수업 게시판에 읽은 내용 요약, 차후 프로젝트 페이퍼 작성 시 인용할 부분, 그리고 탐구적 글쓰기(Exploratory Writing)을 마치고 그 내용을 인쇄해서 들고 와야 한다. 수업이 시작되면 그날 수업을 진행하는 팀이 나와서 책을 읽고 미리 준비한 내용으로, 참여와 경험을 통해 책 읽은 내용을 심화할 수 있도록 한다. 그 후 생겨나는 질문들을 모으고 토의를 한다. 인터넷 게시판의 글쓰기이든지 수업 시간의 토의이든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격려하고, 자신의 경험을 덧붙이고 도우면서 함께 공부하도록 한다. 비판이나 단답형 대답은 지양한다. 간식도 먹어가며 각 팀이 매주 다르게 준비하는 활동을 하고 토의까지 하면 어느덧 세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린다.
특히 인상깊은 점은 그 주에 읽은 내용에 나타나는 교육적 적용점을 교수님이 수업에 직접 구현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주 읽은 글의 중심 주제가 '경헝'이라면 수업 시간에 교수님도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또 학생들도 서로 잘 듣도록 유도하고, '이야기'라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도록 한다. 스스로 자기가 책으로부터 배운 내용을 수업에 적용하려고 애쓰는 선생님을 보며, 학생들도 그런 교사로 변모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 교육에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는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인가보다. 잰 교수님, 멋진 아주머니다. 손주를 보았지만, 그래도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라 그럴 수가 없다.
어제는 내가 속한 팀, 정확히는 이웃(neighborhood)인 'Company We Keep'에서 수업을 인도하는 날이었다. Smith의 'The Book of Learning and Forgetting'이라는 책의 처음 두 장과, Paley라는 사람이 하버드 교육 리뷰에 기고한 'On Listening to What the Children Say' 두 글을 읽어야 했다. 사람은 자신 주변의 사람들, 혹은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을 '우리 동료들(Company We Keep)'로 삼아 배울 때 그 배움이 오래 지속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그러한 공동체적이고 관계적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나와 상대, 세상에 대해 호기심(curiosity)를 가지고 듣고 반응(listen and respond)하는 것이라고 저자들이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팀은 두 가지 활동을 통해, 우리가 흔히 하는 정보전달만을 위한 수업은 맥락과 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학습이 되어 무미건조해지며, 호기심과 듣기로부터 시작되는 학습을 통해 깊이있는 배움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경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으로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과거 가르쳤던 기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시 나는 상당히 효율적인 교사라고 자부했다. 수업목표를 달성하고, 교실을 잘 통제하는 그런 교사 말이다. 그런데 이 글들을 읽다보니 내가 고등학교 시절 가졌던 목마름, 호기심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학습을 아이들에게 주지 못하고 오히려 빼앗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도 그렇게 공부했고, 그게 당연한 학교 교육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책과 수업 시간의 경험을 통해, 교사가 먼저 말하지 않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듣고 반응하면서도 깊이 있는 배움을 해 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미리 정해진 책을 읽고 수업에 오기 전에 인터넷의 수업 게시판에 읽은 내용 요약, 차후 프로젝트 페이퍼 작성 시 인용할 부분, 그리고 탐구적 글쓰기(Exploratory Writing)을 마치고 그 내용을 인쇄해서 들고 와야 한다. 수업이 시작되면 그날 수업을 진행하는 팀이 나와서 책을 읽고 미리 준비한 내용으로, 참여와 경험을 통해 책 읽은 내용을 심화할 수 있도록 한다. 그 후 생겨나는 질문들을 모으고 토의를 한다. 인터넷 게시판의 글쓰기이든지 수업 시간의 토의이든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격려하고, 자신의 경험을 덧붙이고 도우면서 함께 공부하도록 한다. 비판이나 단답형 대답은 지양한다. 간식도 먹어가며 각 팀이 매주 다르게 준비하는 활동을 하고 토의까지 하면 어느덧 세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린다.
특히 인상깊은 점은 그 주에 읽은 내용에 나타나는 교육적 적용점을 교수님이 수업에 직접 구현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주 읽은 글의 중심 주제가 '경헝'이라면 수업 시간에 교수님도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또 학생들도 서로 잘 듣도록 유도하고, '이야기'라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도록 한다. 스스로 자기가 책으로부터 배운 내용을 수업에 적용하려고 애쓰는 선생님을 보며, 학생들도 그런 교사로 변모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 교육에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는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인가보다. 잰 교수님, 멋진 아주머니다. 손주를 보았지만, 그래도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라 그럴 수가 없다.
어제는 내가 속한 팀, 정확히는 이웃(neighborhood)인 'Company We Keep'에서 수업을 인도하는 날이었다. Smith의 'The Book of Learning and Forgetting'이라는 책의 처음 두 장과, Paley라는 사람이 하버드 교육 리뷰에 기고한 'On Listening to What the Children Say' 두 글을 읽어야 했다. 사람은 자신 주변의 사람들, 혹은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을 '우리 동료들(Company We Keep)'로 삼아 배울 때 그 배움이 오래 지속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그러한 공동체적이고 관계적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나와 상대, 세상에 대해 호기심(curiosity)를 가지고 듣고 반응(listen and respond)하는 것이라고 저자들이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팀은 두 가지 활동을 통해, 우리가 흔히 하는 정보전달만을 위한 수업은 맥락과 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학습이 되어 무미건조해지며, 호기심과 듣기로부터 시작되는 학습을 통해 깊이있는 배움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경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으로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과거 가르쳤던 기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시 나는 상당히 효율적인 교사라고 자부했다. 수업목표를 달성하고, 교실을 잘 통제하는 그런 교사 말이다. 그런데 이 글들을 읽다보니 내가 고등학교 시절 가졌던 목마름, 호기심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학습을 아이들에게 주지 못하고 오히려 빼앗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도 그렇게 공부했고, 그게 당연한 학교 교육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책과 수업 시간의 경험을 통해, 교사가 먼저 말하지 않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듣고 반응하면서도 깊이 있는 배움을 해 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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