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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1983년 이웅평 대위 귀순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그랜드 래피즈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학기 초 데이빗 스미스 교수님 댁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10년이 넘게 그랜드 래피즈에 사셨다길래 이 동네 살면서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물었다. 교수님과 사모님 두 분이 댁 근처에 소방서가 있어 시도때도 없이 사이렌 소리를 듣는건 좀 안 좋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토네이도 경보 이야기가 나왔다. 매주 금요일 정오에 토네이도 경보 사이렌을 울린다고 한다. 사이렌이 작동하는지 매주 점검하는 것이다. 그랜드 래피즈가 토네이도 피해를 입은 것 70년도 더 이전이라고 들었다. 그런데도 이런 걸 보면 미국 사람들은 안전에 대해서는 참 철저한 것 같다.
오늘 오전 11시 경, 헤크만 도서관 5층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북한에서 전투기가 넘어올 일은 없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닐 테고, 오늘은 화요일인데, 이런 생각들을 하며 계속 책을 보고 있었다. 목사님 한 분이 아래로 대피해야 되는 것 아니냐 하셔서, 아마 화요일이라도 연습하나 보다고 여유있게 말씀드렸다.
그 순간, 학교 직원이 올라와서 방금 울린게 '실제 상황' 토네이도 경보라 학생들이 모두 지하(1층) 컴퓨터실로 대피해야 한다고 한다. 짐을 챙겨 내려갔다. 컴퓨터실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처음 봤다. 컴퓨터 자리도 꽉 차고 서 있는 사람들도 한가득이다. 직원들은 조끼를 입기도 한다. 11시 30분까지 경보가 발령되어서 나가면 안된다고 공지사항이 발표되었다. 11시 반, 경보가 해제되고 올라갔던 학생들이 5분 만에 다시 내려온다. 두 번째 경보가 발령되었다는 것이다. 약 15분 정도가 지나니 비록 경보는 발령되었지만, 학교 쪽은 아니고 이스트 그랜드 래피즈 쪽이 위험한 지역이라 학교에서는 돌아다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 학생 한 명에게 물어보니 학교 다니면서 대피한 건 처음이라고 한다.
점심을 먹으러 스풀호프 카페에서 수프를 사며 직원에게 물어보니, 자기들도 건물 지하의 지정 대피소로 피신했다고 한다. 보통 콕 집어서 이 지역이 아니더라도 위험지역을 폭넓게 잡아 경보를 발령한다고 한다. 미시간에서는 실제 토네이도가 발생해도 땅에 콕 찍고 끝나는 정도라는 말도 덧붙인다.
어제 저녁부터 비바람이 심하더니 오늘 결국 토네이도 경보까지 나왔다. 토네이도 주의보도 해제되었지만 아직까지 강풍경보가 발령되어 있다. 밖에 바람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비 소리와 합쳐서 아파트 앞 숲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똑같은 사이렌인데, 토네이도 때문에 울린다니, 역시 내가 미국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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