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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 큰 아이 유치원에서 '아버지 참여 수업'을 한다고 한다. 그 '아버지'가 8천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데다, 휙 다녀올 만큼 갑부가 아니라서 참여는 불가능할 듯 하다. 그런데 가족과 통화를 하다가 큰 아이의 반응을 듣고는 참 마음이 아팠다. 유치원에서 '아빠 모시고 오는 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아이가 풀이 죽었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이 미안해 할 만큼. 아내는 '아빠의 아빠'가 대신 가시기로 했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그리고 작년 말에 아버지 참여수업에 같이 갔었지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속이 상할까.
그 마음이 이해가 되는 건,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해외 근무를 오래 하셨다. 특히 아들들은 아버지와 노는 걸 참 좋아하는데, 같이 놀 아버지가 머나먼 중동 지역에 계셨기에 항상 그리움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내가 유치원 다닐 때도 '아버지 참여 수업'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업이 기억나는 건, 바로 그 수업엔 아버지가 오셨기 때문이었다. 옷장 속에 있는 빛 바랜 앨범을 열어보면 아직도 그 때 사진이 있다. 어머니가 플라스틱 노끈으로 만들어주신 인디안 치마를 입은 내 뒤에, 베이지 색 사파리 셔츠를 입은 아버지가 서 계신다. 함께 춤을 추면서. 내 표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참 즐겁고 만족스러웠던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부족하던 한 부분이 채워진 느낌.
그래서 더욱 큰 아이에게 미안했다. 항상 함께 하던 아빠가 반 년 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것도 미안했다. 출국하기 얼마 전, 아빠가 한동안 먼 곳에 가서 공부하다 올 건데, 아빠도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셨을 때 잘 참았다며 너도 잘 참을 수 있겠니 조심스레 물었다. 잘 참을 수 있다고 했고, 지금도 한 번씩 통화할 때마다 잘 참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끔 '잘 참고 있다'는 그 말을 생각하면, 만 세 살짜리 아이에게 너무 큰 마음의 짐을 준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냥 울어도 된다, 아빠 빨리 오라고 투정 부려도 된다고 할 걸, 괜히 애어른을 만든 건 아닌지. 노트북 배경 화면에 수줍게 웃는 큰 아이를 볼 때마다 그래서 더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는 건,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해외 근무를 오래 하셨다. 특히 아들들은 아버지와 노는 걸 참 좋아하는데, 같이 놀 아버지가 머나먼 중동 지역에 계셨기에 항상 그리움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내가 유치원 다닐 때도 '아버지 참여 수업'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업이 기억나는 건, 바로 그 수업엔 아버지가 오셨기 때문이었다. 옷장 속에 있는 빛 바랜 앨범을 열어보면 아직도 그 때 사진이 있다. 어머니가 플라스틱 노끈으로 만들어주신 인디안 치마를 입은 내 뒤에, 베이지 색 사파리 셔츠를 입은 아버지가 서 계신다. 함께 춤을 추면서. 내 표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참 즐겁고 만족스러웠던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부족하던 한 부분이 채워진 느낌.
그래서 더욱 큰 아이에게 미안했다. 항상 함께 하던 아빠가 반 년 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것도 미안했다. 출국하기 얼마 전, 아빠가 한동안 먼 곳에 가서 공부하다 올 건데, 아빠도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셨을 때 잘 참았다며 너도 잘 참을 수 있겠니 조심스레 물었다. 잘 참을 수 있다고 했고, 지금도 한 번씩 통화할 때마다 잘 참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끔 '잘 참고 있다'는 그 말을 생각하면, 만 세 살짜리 아이에게 너무 큰 마음의 짐을 준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냥 울어도 된다, 아빠 빨리 오라고 투정 부려도 된다고 할 걸, 괜히 애어른을 만든 건 아닌지. 노트북 배경 화면에 수줍게 웃는 큰 아이를 볼 때마다 그래서 더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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