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서 사진에 나오는 집앞 단풍나무에 푸른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무가지 위 나뭇잎으로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뭔가 거뭇한 것이 사라지지도 않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집 발코니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하얀 창문 오른쪽 대각선 위로 창문 길이만큼 떨어진 곳에 있는 검은색 부분이 바로 문제의 주인공이다.
새 치고는 덩치가 있어보이는데다가 하루종일 움직이지도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라, 꽤나 신경이 쓰였다. 도대체 저 녀석의 정체가 뭔가 하고 말이다. 마른 나뭇잎이다, 심지어는 우리집 애들이 거의 매일 보는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토토로라는 추측까지 나왔다.
그런데 얼마전 아이들과 바람 쐬러 잔디밭에 나간 길에 드디어 밝은 햇빛 아래서 그 정체를 파악하게 되었다. 새 둥지였다. 그 정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 건 바로 그 밑 잔디밭에 죽어있는 아기새였다. 아이들이 자꾸 그 새를 만지려해서 잔디밭 바깥 아이들이 잘 가지 않는 응달에 묻어주었다. 맨손으로 할 수 없어서 주변의 나뭇가지를 젓가락처럼 써서 옮겼는데, 그 광경을 본 아내는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다. 나뭇가지가 하나는 날씬이 장다리, 다른 하나는 뚱뚱이 거꾸리이다보니 균형이 맞지 않아 두 발짝마다 떨어뜨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집어드는데 땅에 닿아있던 부분에서 정체불명의 벌레 다섯 마리가 기어나오는데, 비위 강하기로 유명한 나도 차마 웃는 얼굴로는 그 놈을 옮기기가 힘들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오른쪽 절반은 썩어가는 죽은 아기새를 두 발짝에 한 번씩 떨어뜨리는 내 모습이 오늘 흔히 얘기하는 '빅 웃음'을 선사했다는 것이다.
오늘 오후 집에서 쉬다가 그 둥지의 주인을 발견했다. 그 둥지에서 누군가 날아나오는데, 바로 미시간 주의 새인 개똥지빠귀(Robin)였다. 위 사진을 확대한 오른쪽 사진에 자세히 보면 매일 우리집에 아름다운 소리를 전해주는 주인공이 딱 버티고 있다.
집 주변의 미스터리가 또 한 번 해결되는 순간이다. 우연히 시청하던 PBS의 새 관련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캐나다 기러기 이후로 또 하나의 성과랄까. 분명히 공부하러 온 건 교육일텐데 왠지 새 공부만 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