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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도대체 뭘까? 얼핏 무쓸모처럼 보이는 철학에 대한 책이 이렇게나 많이 출판되는 건 왜일까? 정말 철학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철학자들의 학문인 철학과 개똥철학은 완전히 다른 걸까? '철학'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지적인 도전을 위해, 다른 사람은 인생의 방향을 잡기 위해 철학책을 집어 든다. '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수업'은 제목만 봐서는 상당히 무겁고 딱딱해 보인다. 표지의 그림을 봐서는 너무 점잖아 보인다. 그렇지만 책을 펴서 첫 장의 문체를 접하는 순간, 그리고 바로 옆의 만화를 보는 순간, 제목 때문에 이 재미있는 책을 지나칠 뻔했구나 싶다.

 

 

이, 이보시오, 의사 선생. 만약 아침에 깨어난다면이라니...

이 책의 영어 제목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그린다 (I think therefore I draw)"이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을 응용한 이 원제는 이 책이 어떤 성격인지를 잘 보여준다. 원제의 센스를 잘 살렸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수업'이라는 평범하고 무거운 제목이라 책에 넘쳐흐르는 재치를 충분히 담지 못한 듯하다. (개정판이 나올 때는 재치 넘치는 제목으로 바뀌어 있길 기대해본다.)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숙고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철학에 쉽게,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만화와 유머로 무장한 책이다. 그래서 어떤 철학 입문서보다도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에 겁먹지 않고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책 뒤에는 책에 등장한 철학자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까지 붙어 있다.

 

하하하. 눈사람이 대출 받으러 오면서 그런 문제도 생각 안 했을까봐.
우주의 섭리는 얼마나 간단한지, 그리고 승진하기는 얼마나 쉬운지.

이 책에서는 18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이 답을 찾아 헤메던 문제들이다. 이 18가지 주제를 다시 내 마음대로 네 가지로 묶으면 (1)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2) 앎이란 무엇인가 (3) 지혜와 경험 (4) 철학의 쓸모 (실용성) 쯤 될 것 같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지

그중에서 몇몇 장이 관심을 끌었다. 이런 제목들이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 인생은 계속 거짓말을 한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법,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여전히 쓸모 있다. 적어놓고 보니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들, 올바름과 좋음이라는 가치, 함께 살아가는 사회 등에 대한 주제들이다.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인지, 그런 것들이 내가 가장 관심 있는 주제인가 보다.

선생님은 할 말을 잃었다...

만화들 중에서 교육에 대한 것, 교실에서의 선생님과 아이의 대화도 흥미로웠다. 보통 아이들이 교실에서 할 것 같지 않은 질문, 그렇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음직한 질문을 던지는 아이. 선생님 채점 방식은 시험 잘 보는 애들에게나 유리하다니. 정말 놀라운 질문 아닌가. 열심히 사는 사람만 잘 사는 세상이라니, 불공평한 것 아닌가요 같은 질문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학생이 학교의 채점 기준에 대해서는 쉽게 질문을 제기하지 못 하듯이, 빈부격차 같은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 우리에게 저런 만화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역시 교실에서 일어난 일 (같은 작가)에 대한 만화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충격적이다. 아이들에게 1+1=2라는 답을 어떻게 얻었는지 과정을 설명해 달라니... 선생님은 답을 알고 던진 질문일까? 그런데 이런 상황을 통해 저자들은 지식은 어떻게 얻는 것일까, 즉 배워서 아는 것일까, 경험해서 아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한다.

아이의 표정은 기가 막힌 걸까, 자신 있는 걸까?

저런 질문들을 볼 때면 사람들은 정말 쓸 데 없는 생각을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철학의 쓸모에 대한 것이다. 보통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을 붙들고 씨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학문이 철학이다. 특히 이 책은 만화와 함께 철학이 역사적으로 다뤄온 다양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데, 만화와 저자의 문체 (그리고 역자의 부드러운 번역) 덕분에 겁 먹지 않고 그런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부담스러운 철학자들의 사상을 만화와 유머를 통해 우리가 고민하는 삶의 중요한 문제들과 연결시켜 소개한다. 철학에 재미를 붙이기는 쉽지 않은데, 이 책은 만화가와 저자의 재치 덕분에 겁 없이 철학의 세계에 뛰어들 수 있게 도와준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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